강요된 권위와 언론자유 – 리영희 선생(전환시대의 논리)
우화
옷을 입지 않은 임금을 보고 벌거벗었다고 말한 소년의 우화는 그 소년의 순진함이나 용기만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진실은 반드시 빈시랟로 밝혀지게 마련이라는 인간생활의 진리를 말하려는 것만도 아니다. 그러나 이 우화의 해석은 대체로 그 우화를 구성하는 일련의 인과적 요인들이 엮어내는 ‘과정’에 대해서는 깊게 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 그 보이지 않는 비닷옷이라는 것을 팔러 온 형제 상인은 어째서 그토록 맹랑한 술책이 먹혀들어갈 거시알고 생각했던 것일까. 임금에게 있지도 않는 옷을 입혀놓고 아름답다고 한 임금 측근자들의 이해관계는 어디를 향해 있던 것일가. 임금이란 으레 아첨배에 속게 마련인 것일까. 그리고 옷을 걸치지 않고도 입었다고 우기는 ‘통치자의 진리와 권위’는 임금의 것인가 측근 아첨배의 것인가. 이와 같은 ‘허구와 허위’는 통치자드의 속성이어야 하는가. 허위가 진리의 가면을 쓰고 나타날 수 있는 그 사회의 제도와 풍토는 어떤 것일까. 그 많은 백성들 가운데 임금의 알몸뚱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도 많았을 텐데 왜 모두들 입을 다물고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까. 또는 못 했을까.
가장 어리석은 소년에 의해 온 사회의 허위가 벗겨지기까지 그 임금과 재상들과 어른들과 학자들과 백성들은 타락과 자기부정속에서 산 셈이다. 마침내 한 어린이가 나타나서 보다 현명한 어른들을 타락에서 구하기는 했지만, 그동안 이 왕국을 지배한 타락과 비인간화와 비굴과 자기모독,그리고 지적 암흑상태가 결과한 인간파괴와 사회적 해독은 무엇으로 측량할 것인가.
인간 해방과 사상의 자유의 역사는 어차피 독선에 대한 회의(懷疑)가,권위에 대해 이성(理性)이 승리를 거두는 긴 투쟁의 되풀이임이 틀림없다. 우화도 그렇고 현실도 그렇고 역사는 한 단계의 투쟁이 끝나면 으레 ‘임금은 알몸이다’라고 폭로한 소년의 용기에 열중한 나머지, 힘없는 소년에게 그런 엄청난 임무를 떠맡기게 된 그 사회의 실태에 대해서는 눈이 미치질 않는다. 문제시해야 할 중요한 것은 그 영광(또는 해결)까지의 과정에 얼마나 많은 인간적 타락과 사회적 암흑과 지적 후퇴가 강요되었느냐 하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겠다.
Wednesday, December 1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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